[사진+기사] 유홍준 관장, 시카고서 “한국 역사 속 자주성의 힘” 강조

사진, 기사: 박원정 | neomusica@hotmail.com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한국 역사와 문화의 독창성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재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관장은 6일 시카고한인문화원 비스코홀에서 ‘한국 역사의 힘과 한국 문화의 독창성’을 주제로 강연하며 “한국은 작은 나라가 아니라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독자적 역량을 유지해 온 나라”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회가 경제와 민주화에서는 빠르게 발전했지만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문적 인식은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 역사를 지나치게 피해의식이나 패배의식으로 설명하는 경향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유 관장은 고려와 조선의 역사 사례를 통해 한국이 외세 속에서도 자주성을 지켜온 과정을 설명했다. 대표적으로 고려의 거란 침입 당시 외교관 서희가 협상을 통해 전쟁을 피하면서도 강동 6주를 확보한 사례를 들며 “단순한 승패가 아니라 외교적 지혜로 국익을 지킨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몽골 침입에 대해서도 기존의 ‘지배를 당한 역사’라는 인식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려는 27년간 항쟁을 이어가며 결국 몽골과 협상을 통해 왕조를 유지했다”며 “세계 최강의 몽골 제국 속에서도 독립 왕조 체제를 유지한 것은 큰 성과”라고 설명했다.

조선 시대의 병자호란 역시 단순한 굴욕의 역사로만 볼 것이 아니라 당시 국제정치 속에서 현실적 선택이 이루어진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끝까지 싸우자는 강경론과 현실적 협상을 주장하는 화의론 모두 국가를 위한 선택이었다”며 “우리 역사에서 싸우자는 사람만 애국자로 보는 시각은 균형 잡힌 인식이 아니다”라고 했다.

유 관장은 또 한국 역사의 특징으로 장기간의 국가 지속성과 중앙집권 체제를 들었다. 그는 “한국은 약 2000년 역사 동안 외세의 직접 지배를 받은 기간이 일제 강점기 35년뿐”이라며 “같은 기간 중국은 여러 차례 이민족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역사적 경험이 한국 사회의 정치적 안정과 문화 발전의 토대가 됐다고 평가했다.

강연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이어진 한반도 문화의 독창성도 소개됐다. 특히 연천 전곡리 구석기 유적에서 발견된 주먹도끼는 동아시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기존 학설을 뒤집으며 세계 고고학 지도를 바꾼 사례로 언급됐다.

유 관장은 “한국 문화유산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까지 함께 이해해야 한다”며 “세계사적 시각에서 한국 역사를 바라볼 때 우리의 문화적 가치와 자부심을 제대로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수많은 전쟁과 외세 압력 속에서도 국가와 문화를 유지해 온 드문 사례”라며 “한국 역사의 힘은 바로 그 자주성과 문화적 지속성에 있다”고 말했다.

유홍준 관장은 강연 말미에서 한국 미의 핵심 정신을 설명하며 ‘검이불루 화이불치’를 강조했다. 그는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이 미학적 원칙이 한국 문화의 품격과 균형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유 관장은 이러한 정신이 한국 문화유산 전반에 흐르는 미의 기준이라며 시간 관계상 강연을 이 대목에서 마무리했다. 참석자들은 마지막까지 이어진 설명에 큰 박수로 화답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를 설명하는 유홍준 관장
강연에는 초등학생부터 80대 연장자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청중이 참석했다

강연을 하는 유홍준 관장

강사를 소개하는 시카고한인문화원의 조계영 이사
강연 후 북 싸이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