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임윤찬, 시카고심포니와 협연 - 비상하는 천재성, 심장을 파고들다

이소정 | 피아니스트, 미국 저드슨 대학교 교수

한국이 배출한 천재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CSO)의 차기 음악감독으로 지명된 핀란드 출신의 젊은 거장 클라우스 메켈라가 함께 하는 공연이 2025년 12월 18일부터 20일까지 시카고 심포니 센터에서 열렸다. 이번 공연은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과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중심으로, 진은숙의 ‘수비토 콘 포르차’와 외르그 비트만의 ‘콘 브리오’가 베토벤에 대한 오마주로서 함께 배치되어 현대와 고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정교한 프로그램 구성을 선보였다.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임윤찬은 전 세계의 주요 무대에서 연주해 오며 연이어 예외적인 찬사를 받고 있다. 2023년 라비니아 페스티벌에서 CSO와 함께 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통해 그 강렬한 존재감을 각인시켰고, 이번 슈만 협주곡 무대에서는 보다 내면적이고 시적인 차원의 해석으로 다시 한 번 청중을 사로잡았다.

메켈라와 임윤찬 (사진=Todd Rosenberg)

슈만 피아노 협주곡은 낭만주의 특유의 깊은 사색과 서정성이 충만한 작품이다. 1845년 작곡 당시를 기준으로 볼 때, 이 곡은 독주자와 오케스트라의 대비 효과를 극대화한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협주곡과 다른 미학을 지니며, 당대 유행하던 화려한 기교 중심의 협주곡 양식에서도 분명한 거리를 둔다. 본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판타지’라는 단악장 구성에서 시작해 후일 세 개의 악장으로 확장된 만큼, 형식적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과 시적 연속성이 곡 전반에 흐른다. 임윤찬은 변화무쌍한 주제들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이 협주곡의 내적 서사를 30분간 섬세하고도 대담하게 풀어내며 청중으로부터 깊은 몰입을 이끌어냈다.

슈만 협주곡의 첫 주제는 아내 클라라(Clara)의 이름을 암호화한 네 음 모티브로 시작된다. 슈만은 이 모티브를 곡 전체에 걸쳐 변주하며 ‘주제적 변형(Thematic Transformation)’ 기법을 통해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구현한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선율의 단편들을 유기적으로 주고받는 모습은 슈만 가곡에서 성악과 반주가 빚어내는 섬세한 관계, 혹은 그의 실내악에서 발견되는 악기 간의 친밀한 대화를 연상시킨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는 함께 노래하며 서로의 시적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임윤찬은 지휘자 메켈라와 함께 이 슈만 특유의 텍스처를 정교한 비단을 짜듯 세밀하게 직조해 나갔다. 1악장의 내림 A장조 섹션에서는 별빛 아래 속삭이는 연인들의 대화가 떠올려졌고, 불협화음이 누적되는 발전부 후반에서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간에 끓어오르는 용암의 거대한 파동이 감지되었다. 2악장에서 메켈라가 이끄는 첼로 섹션의 선율과 임윤찬의 손끝에서 피어오르는 피아노 선율이 만들어낸 대범하면서도 유연한 템포 루바토(Tempo Rubato)는 천상의 황홀경이었다.

로켓처럼 힘차게 솟구치는 3악장 첫 주제 이후, 임윤찬은 리듬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의도적으로 여유로운 템포로 첫 마디를 시작하며 해석적 확신을 드러냈다. 또한 악장 종결부에서는 화성적 반전이 일어나는 프레이즈의 출발점을 유연하게 처리함으로써, 쉼없이 몰아치는 3악장에 신선한 숨결을 불어넣었다. 종결부에서 보여준 명확하고 깊이 있는 타건, 그리고 강약 및 음색 변화의 극치는 단순한 소리의 완결을 넘어 자유를 향한 내적 열망으로 다가왔다.
시카고 심포니 홀을 가득 메운 청중은 때로는 무지개처럼 환상적인 음색으로, 때로는 숨 쉬는 듯한 우아한 완급 조절로, 또 때로는 폭발적이되 결코 과잉되지 않은 충만한 에너지로 노래하는 임윤찬의 연주에 숨을 죽였다. 끝까지 흥분과 환희 속에서 팽팽한 긴장과 몰입을 유지한 임윤찬의 연주는, 그의 음악이 오늘날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를 사로잡고 있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증명해 주었다.

3악장의 마지막 음이 울려 퍼진 직후, 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다. 특히 3층 발코니석 시니어 관객들이 보낸 열광적인 환호는 이번 공연의 깊은 울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19일 마티네 공연의 앙코르에서 임윤찬은 에리히 콘골드의 오페레타 ‘소리 없는 세레나데’ 중 ‘아름다운 밤(Die schönste Nacht)’을 연주했다. 클라라를 향한 슈만의 애정이 담긴 협주곡의 정서를 잇는 사려 깊은 선택이었다.

임윤찬 연주 (사진=Todd Rosenberg)

임윤찬은 약관의 나이에 이미 누구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라두 루푸의 사색, 마르타 아르게리히의 정열,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의 직관 등 거장들의 유산을 품으면서도, 그는 강인하고도 따뜻한 자신만의 서사로 청중의 심장을 정면으로 파고든다.
그 힘의 근원은 음악 앞에서의 겸허함, 소통에 대한 순수한 열정, 그리고 천부적인 재능의 결합에 있다고 본다. 클래식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마저 눈물 흘리게 만드는 힘, 그것이 바로 임윤찬 음악의 실체다.

베토벤이 <장엄 미사> 악보 첫머리에 남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부디 다시—마음으로 돌아가기를(From the heart—may it return—to the heart)”이라는 문구는, 오늘날 임윤찬의 연주를 통해 고결한 방식으로 실현되고 있다. 진실되게 소통하고 영혼으로 노래하는 이 천재 피아니스트와 동시대를 살며 그의 음악적 성장을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크나큰 축복이다. 5년 후, 아니 10년 후 그가 도달할 음악적 지평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임윤찬 연주 (사진=Todd Rosenberg)
임윤찬이 메켈라의 손을 잡고 무대인사를 한다 (사진=Todd Rosenberg)
같은 날 시카고 심포니의 베토벤 7번 교향곡 연주의 모습 (사진=Todd Rosenberg)

관련있는 뉴스매거진의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