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카고의 K라디오, 역사의 뒤안길로∙∙∙한인 언론계 최악 상황
박원정 PD | neomusica@hotmail.com
입력 2023. 04.04 10:30am
지난 3월 31일 오후 12시 55분께 김수현 아나운서는 정오뉴스를 마치면서 K라디오의 폐업 사실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오늘 마지막 방송을 하면서 저도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모든 방송이 오늘로 끝이 납니다. 그동안 저희 라디오를 사랑으로 청취해주시고 응원해주신 모든 청취자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인사 드립니다.”
폴란드계 소유의 AM 1330 채널을 임대해 매주 5일, 하루 8시간(오전 9시~오후 5시) 동안 방송해 온 K라디오는 재정적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이날을 끝으로 34년 역사의 라디오 방송을 접고야 말았다.
방송 매각설은 수년 전부터 돌았고, 최근 수개월간 소문이 더 무성했으나 결국 인수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인수가는 약 15만 달러로 알려졌다.
K라디오는 김용화 전 한국일보사장이 1989년 창업한 ‘라디오 한국방송’에 뿌리를 두고 있다. 2005년에 정동찬 씨가 인수해 ‘시카고 라디오코리아’로 사명을 변경했고, 정동찬 씨 친인척 관계의 직원이 2012년 ‘K라디오’로 이름을 바꾸어 사업을 이어왔다.
김수현 아나운서가 진행한 ‘뉴스라인’과 ‘음악여행’은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고, 수년 간 음악방송을 대체해 편성된 한국 CBS의 ‘김현정의 뉴스쇼’도 관심을 끌었다.
K라디오의 전신인 라디오코리아에서 근무했던 최천순 현 WIN-TV사장은 “K라디오의 폐업이 아쉽고 안타깝다”며 “어려운 광고시장 상황이 초래한 것이라고 본다. 언론사들이 다 잘 되어야 선의의 경쟁 가운데 건강한 언론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고 뉴스매거진에 밝혔다.
한인사회의 적잖은 사람들이 34년 간 이어온 라디오 방송의 폐업을 아쉬워하고 있다.
방송 사업에 관심을 가진 인사들도 없지 않다. 라디오 방송 사업의 불씨는 아직 살아있다.
AM1330 채널의 모회사인 폴넷 커뮤니케이션에 따르면 채널 임대료 월 1만2천달러(시간당 75달러)에 과거 K라디오 시간대에 한국어 방송을 이어갈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시간당 2백달러를 호가하던 때에 비해 현저히 낮아졌다.
그러나 일부 TV 채널의 월임대료(일24시간)가 1만달러에서 1만5천달러 선인 것을 감안하면 라디오 채널로
써 결코 낮은 가격만은 아니다.

시카고 한인 방송∙언론계의 어려움
시카고 지역의 한인 언론매체는 과연 몇 개일까?
2009년부터 지상파 TV채널에서 방송을 송출하다가 2017년 디지털 매체로 전환한 ‘뉴스매거진 시카고’를 포함, 교차로 신문사, 시카고 중앙일보, 코리아트리뷴 등 총 6개 매체가 직접 취재한 로컬 뉴스를 시카고 지역사회에 제공하고 있다. 라디오 종교방송으로는 AM1590 채널의 시카고기독교방송이 있다.
한편 한미TV는 지난 1월을 끝으로 장수 프로그램인 ‘뉴스 930’을 폐지하고 KBS아메리카 방송만 중계하고 있다. 재정난에 따라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이다.
재정적 어려움은 대부분 언론사가 겪고 있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풀타임 취재 기자 1명 이상 둔 방송∙언론사가 두어 곳뿐이라는 사실은 시카고 한인언론계의 심각한 어려움을 반증한다.
그 어려움은 예견된 바였다. 타 지역보다 시카고의 쇠락이 매우 빠른 편이다.
한인사회 구성원들의 고령화와 은퇴자들의 타주 이주가 두드러진다. 반면 시카고 지역의 한인 이민은 급격히 줄었다. 또한 높은 재산세와 적은 일자리는 30, 40대의 타주 이주를 촉진시키고 있다. 떠나는 사람은 많은데 들어오는 사람은 매우 적다.
한국어권 인구가 감소하니 방송∙언론의 수용자도 급격히 줄어든다. 이는 광고시장 규모와 언론사의 광고수입과 직결된다.
거기에 스마트폰으로도 완성도 높은 뉴스와 고급 정보를 쉽게 보고 읽을 수 있는 시대적 환경은 구조상 양질의 보도와 기사를 내기 어려운 동포언론이 경쟁에서 밀리게 만든다.
시카고 라디오코리아 공동사장과 한미TV 부사장을 지낸 언론인 조광동 씨는 이렇게 전망했다.
“한인사회가 이민 노년기로 저물고 새로운 이민이 오지 않기 때문에 미디어도 쇠퇴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재래식 신문이나 라디오는 생존 기회가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 디지털 혁명을 거스를 수가 없다.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고 미래를 예견하면서 미디어도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리치 고든 노스웨스턴대학 저널리즘과 교수도 전통매체가 생존하기 위해선 온라인과 모바일을 강화하며 혁신을 이뤄야 한다고 뉴스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미래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혁신을 이뤄야 한다. 실행 가능 여부는 타켓층이 누구이며, 디지털 기술에 대한 접근, 수익구조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시대적 당면 과제인 디지털 혁신을 이루면서 한국어권 수용자의 감소를 타파하며 타겟 독자 및 시청자를 확보해 나가는 것이 관건이다.

동서고금 많은 민족의 이민사에서 1세 사회가 저물고 쇠락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적 흐름이다.
다만 시카고가 타 지역 한인사회보다 그 쇠락세가 가파르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로 다가온다.
그렇기에 한국어권 인구가 크게 증가하지 않는 한 한인 방송∙언론의 어려움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타 지역 또한 언젠가 마주하게 될 상황이다.
피할 수 없는 미래, ‘어떻게 진화하느냐’가 모두의 고민이다.
(기사 최종 업데이트: 2022. 04.04. 12:40p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