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조프리 발레단 ‘호두까기 인형’ — 고전의 기억을 새 시대의 무대 위로 불러내다
리뷰: 백지숙 시카고한국무용단 부단장
학창시절 추억 속 작품을 다시 마주한 무용 전공자의 시선
시카고 조프리 발레단이 선보인 호두까기 인형이 오랜만에 클래식을 찾은 관객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학창시절 이후 다시 마주한 이 작품은 여전히 반가운 차이콥스키 음악을 품고 있었지만, 그 위에 펼쳐진 무대는 전통적 발레 이미지와는 또 다른 결을 띠며 ‘고전의 현재화’를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특히 1막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세 명의 라이브 악사가 무용수와 함께 무대를 채운 순간이었다. 음악이 단순한 배경이 아닌, 장면의 에너지와 움직임을 직접 이끄는 요소로 등장하며 극의 호흡을 새로운 깊이로 끌어올렸다.
무대 디자인 역시 이 작품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무대 뒤편을 넘어 양 벽면까지 확장된 영상은 서사적 공간을 입체적으로 확대하며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직접 끌어들였다. 전면·중간·후면에 배치된 샤막(스크림)을 활용한 장면 전환은 현실과 꿈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흐리게 했고, 시대적 배경인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의 분위기까지 품어냈다. 무대 자체가 하나의 해설자가 된 셈이다.
전통적인 디베르티스망(흥미로운 볼 거리)로 구성된 2막은 이번 공연에서 가장 큰 변화가 감지되는 부분이었다. 익숙한 고전 변주가 아닌, 흐름 중심의 안무와 현대적 움직임이 중심에 놓이며 안무가가 고전을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말하고자 한 의도를 드러냈다. 일부 관객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지만, 재구성의 방향은 분명했고 서사적 맥락에서도 설득력을 가졌다.
무대에 따뜻한 생기를 더한 것은 어린 무용수들의 등장이다. 아이들의 순수한 움직임은 작품이 지닌 ‘꿈’과 ‘성장’의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며 공연장에 동화 같은 분위기를 불어넣었다. 테크닉보다 진정성이 돋보였고, 이는 작품 전체의 정서적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요소는그레이트 임프레사리오가 꿈속에서 왕자와 같은 존재로 변주되어 등장하는 설정이다. 현실과 꿈이 서로를 비추며 이어진다는 상징적 구조는 공연의 마지막에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무용 전공자의 눈으로 본 이번 호두까기 인형은 두 가지 감정이 나란히 존재하는 무대였다. 과거 학창시절 보았던 전통적 구성에 대한 향수가 있었던 만큼 변화된 형식에 아쉬움도 있었지만, 고전이 시대에 맞춰 다시 번역되고 재해석될 수 있음을 체감하게 한 작품이기도 했다. 이는 고전과 결별이 아니라 기억의 또 다른 층위를 여는 과정이었다.
조프리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은 단순한 ‘새 버전’이 아니라, 고전이 현재의 감각 속에서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무대였다. 전통을 고정하지 않고, 다시 쓰며, 시대와 호흡하는 작품으로 거듭났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였다
<뉴스매거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