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한국 도예가 이강효, 시카고에서 인터뷰

지난 10일 시카고한인문화원 비스코홀에서 한국 현대도자기의 대표주자인 이강효 작가와의 대화<전통을 영감으로>가 열려 많은 미국인들이 참석하며 시카고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작가 이강효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도예가로 전통 옹기 기법과 분청사기의 현대적 해석을 통해 독자적인 조형 세계를 구축해왔다. 40여 년간 자연과 삶을 주제로 작업해오며 ‘분청산수’라는 자신만의 예술 장르를 정립했다. 국내외 다양한 전시와 워크숍을 통해 한국 도자의 아름다움과 철학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그의 작품은 영국 대영미술관,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 시카고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필라델피아 미술관, 이탈리아 국제도자박물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작품세계를 설명 중인 이강효 작가 (사진=박원정)

박원정 뉴스매거진 PD가 이강효 작가를 인터뷰했다.

Q. 작가님께 ‘흙’이란 무엇입니까?

흙은 제 인생이자 친구, 평생 함께한 반려입니다. 40여 년 동안 흙이란 매체를 통해 제 자신을 표현해왔습니다.

Q. 흙으로 만드는 예술의 아름다움은 무엇인가요?

흙으로 조각 작품을 만들기도 하지만, 도예는 흙을 이용해 형태를 만들고 불에 구워 단단한 도자기로 완성하는 예술입니다. 물렁한 흙의 물성을 손으로 빚고, 불의 심판을 거쳐 완성되는 예술이 도예입니다. 또한 흙은 인간의 삶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흙은 만물의 근원으로 인간은 흙에서 태어나 흙에서 자란 것을 먹고 살아가고 흙으로 순환하고… 흙은 인간의 본연, 고향 같은 존재입니다.

Q. 작품에 적용된 옹기와 분청 기법을 설명한다면?

옹기 항아리는 ‘타렴질’이라는 방식으로 만듭니다. 흙을 쌓고 두드려 형태를 만드는 이 기법은 우리나라 선사시대 토기부터 이어져 온 만 년의 전통을 가진 기술입니다. 한국의 옹기 제작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뛰어납니다. 비유하자면, 다른 나라 기술이 286 컴퓨터라면 우리는 AI 수준이라 할 정도로 정교하고 발전해 있습니다.

여기에 제가 주목한 것이 ‘분청’입니다. 철분이 많은 태토 위에 밝은 ‘화장토’를 바르는 방식으로 마치 얼굴에 분을 바르듯 그릇을 장식하죠. 밝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이 기법은 너무 완벽한 것보다는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선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의 미감과 잘 어울립니다.

분청사기에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 기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거칠게 붓질하는 ‘귀얄 기법’, 다른 하나는 그릇 전체를 화장토에 담그는 ‘덤벙 기법’입니다. 저는 옹기 제작 기법을 성형에 응용하고, 장식에는 귀얄이나 덤벙을 활용해 제 나름의 미감을 표현합니다. 현재는 ‘분청산수’를 주제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분청은 고려의 청자와 조선의 백자 사이, 15~16세기쯤 등장한 과도기적 양식입니다. 황토빛 흙을 더 아름답게 표현하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분장 기법이 생겨났죠. 분청은 약 150년간 유행했지만 이후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백자의 시대가 왔습니다. 분청의 자유롭고 과감한 선은 당시 변화의 시대 정신을 담고 있으며 지금도 저는 그 해방감이 한국 도자기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시카고한인문화원에 전시된 작품 ‘분청산수’와 이강효 작가 (사진=박원정)

Q. 한인문화원에도 전시된 오랜 시리즈 작품 ‘분청산수’에 대하여
저에게 ‘분청’이란, 흙 위에 그리는 산수화입니다.

보통 전통적인 담묵화는 하얀 종이에 검은 먹으로 그림을 그리잖아요. 그런데 도자 분야에서 분청은 흙 위에 칠하고 그리는 작업입니다. 도자이지만 회화적인 장르성도 절반 정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죠. 그런 점에 착안해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고요. 저는 도시 출신이지만 항상 자연을 동경해 왔고,대학을 졸업한 이후 40년 가까이 시골 전원에서 도기를 만들며 살아왔습니다. 제 작업실 주변 풍경은 늘 산과 나무, 흐르는 물,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죠. 한국은 국토의 70%가 산이지 않습니까? 그런 자연 풍경들이 제 작업의 주요한 소재이자 배경이 되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그 풍경을 바라보며 작업을 해오다 보니, 어느새 저의 안에 자연이 체화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풍경을 흰 화장토로 그려나가는 작업을 ‘분청산수’라고 부릅니다. 분청 작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제가 좋아하는 ‘하늘’을 자주 그리게 되었어요. 하늘은 늘 변화무쌍하고,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늘 존재하잖아요. 그런 하늘과 바람, 구름과 햇빛 같은 것들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분청 그릇 위에 그런 이미지들을 표현하게 된 거죠.

본격적으로 분청 작업을 시작한 건 약 20여 년 전부터입니다. 그 이전에도 유사한 작업은 해왔지만, 산수적인 표현이 중심이 되면서 제 작업을 ‘분청산수’라고이름 지었습니다. 작은 찻잔부터 2미터에 달하는 대형 작업까지 다양하게 해왔죠. 모두 합치면 수백, 수천 점은 될 겁니다. 개수로는 이제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만큼 많은 시간과 마음을 담아왔습니다. 작품을 판매하면서 생활을 유지하고 또 그 안에서 더 좋은 작업을 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해온 셈입니다.

시카고한인문화원 ‘이강효 작가와의 대담’ (사진=박원정)

Q. 2미터에 달하는 커다란 도기에 펼치는 퍼포먼스도 매우 유명합니다. 어떤 뜻이 담겼나요?

도예는 다른 미술 장르에 비해 해외 워크숍 프로그램이 많은 편입니다. 특히 한국 및 동아시아는 도자 문화가 발달해 있기에 저는 미국, 유럽, 일본 등지에서 자주 초청을 받습니다.

제가 가진 가장 큰 기술은 ‘옹기 제작’으로 짧은 시간 안에 거대한 항아리를 만드는 세계적인 기술입니다. 그래서 큰 행사에서 시연을 하게 되는데, 이 퍼포먼스는 단순 제작이 아니라 관중과의 소통이자 에너지의 울림입니다.

평소 조용한 작업실에서 하는 ‘분청산수’ 작업과는 다르게, 퍼포먼스는 관객, 저, 그리고 항아리가 함께 호흡해야 하죠. 그 에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음악을 활용합니다. 옹기를 만드는 건 일곱 여덟시간이 걸리지만, 퍼포먼스로 7분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거대한 항아리에 화장토 장식을 마쳐야 하는데 음악의 리듬이 집중과 표현에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김덕수 씨의 사물놀이 같은 강렬한 음악을 자주 사용해 관객과 공감을 극대화시킵니다.

Q. 작가님은 왜 도자기를 만드십니까?

처음 미술을 시작할 때 제 모티브는 ‘아름다운 삶’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삶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고민 끝에 미술대학에 진학했고 자연스럽게 도자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흔히 예술가들은 ‘예술을 위해 산다’고 말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삶을 위한 예술이어야지,예술을 위한 삶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도자기를 해온 지도 벌써 45년이 넘었습니다. 제 인생의 거의 전부이죠. 도자기는 제 삶을 더 아름답게 펼쳐주는 하나의 도구이자 길입니다.

저는 더 좋은, 더 훌륭한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늘 고민하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도자기는 제게 반려이자 친구 같은 존재이고, 아마 죽을 때까지 함께할 인생의 동반자일 것입니다.

이강효 작가의 ‘분청산수’ 두 점은 시카고한인문화원 박물관에서 열리는 <흙의 미학>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10월 18일까지 전시된다.

뉴스매거진 스튜디오에 자리한 이강효 작가 (사진=박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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