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 인기 라디오프로 ‘김정일의 시사해설’ 오늘 막 내려
마지막 사인오프였다.
늘 명쾌함과 자신감으로 가득 차있던 진행자 김정일 방송위원의 음성에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매일 아침 AM1590 라디오주파수를 통해 시카고의 아침을 밝힌 김정일 시카고기독교방송위원의 ‘시사해설’이 오늘 오전 방송을 끝으로 20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000년 9월 방송을 시작한 김 위원의 시사해설은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분야 이슈의 맥을 잡고 통찰력 있는 해설과 탁월한 진행으로 지난 20년간 사랑을 받았다.
9.11 테러와 같은 국가비상사태와 박빙의 대통령 선거전에서 실시간 보도로 정확한 소식을 바라는 시카고인 한인들의 귀를 라디오 주파수로 모았다. 또한 아나운서 백지연의 프로그램을 포함해 한국의 유명 라디오 방송들이 앞 다퉈 김 위원의 미국 소식을 담기도 했다.
“미국 주류사회의 동향을 매일 설명해드리고 해설해드리는 게 내 직업”이라고 말했던 김정일 위원. 오늘 새벽 자택에서 마지막 방송을 녹음할 때는 정장 차림에 넥타이까지 착용하고 임했다. 오랜 세월 함께 해 온 청취자들에 대한 예의였다. “참 감사하고 영광이죠. 저를 신뢰해 주신 거니까.”
(2018년 9월 사진)
20년간 방송을 이어온 시사해설의 기획의도는 세 가지였다: 1) 미국에서 나그네가 아닌 주인으로 살겠다는 결심 2) 이등시민이 아닌 일등시민으로 살겠다는 결심의 선언 3) 역사서가 아닌 예언서에 대한 믿음
이민자의 삶이 미국사회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늘 강조한 김 위원은 오늘 종방에서 “변방인의 삶(marginal life)을 살지 말고 이 사회의 주인이 되라”고 당부했다.
또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과 동시에 여기에 걸맞은 지식과 지혜를 수반해야 한다. 미국의 주요이슈의 실체가 무엇이고 이것이 나의 삶과 어떤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가, 나의 의견은 무엇인가, 보수와 진보의 의견 차는 무엇이고 나의 관심사에 대한 시각차는 무엇인가? 이와 같은 지식을 가져야만 다민족 다문화 사회 속에서 번영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한 외국인의 이미지에서 평생을 이 사회 속의 뜨내기나 객, 손님, 나그네로 살게 될 것이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오랫동안 방송을 통해 주인의식을 갖고 사회의 번영과 발전에 공헌하며,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 지향적며 진취적 태도로 살아가야 한다고 피력했다.
1970년 한국에서 MBC 문화방송 기자로 언론에 입문한 김정일 위원은 1976년 미국으로 이민 온 후 시카고한국일보 총무국장, 시카고한국방송(라디오) 부사장을 역임했다. 이어 지난 20년간 시카고 기독교방송에서 방송위원으로 근무했다. 그의 언론 외길은 50년을 헤아린다.
방송언론계에서 일해 본 사람들은 안다. 매일 새벽 십여 분 분량의 뉴스해설을 준비하는 업무가 얼마나 어렵고 부담되는 일인지. 성실함과 사고력, 순발력은 기본적인 소양이다. 김정일 위원이 작가나 보조요원을 두지 않고 자료수집과 팩트체크, 원고작성을 20년 동안 직접 해왔다는 것은 놀랍다. 무엇보다 시사의 맥을 관통하는 그의 50년 지식과 통찰력, 전달력은 그를 가히 독보적인 전설로 기억되게 한다.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는 “책이나 읽고 성경을 공부할 것”이라며 이제 “뒷방 늙은이가 되겠다”고 답했다. 보이지 않는 너스레웃음이 답변문자에서 묻어났다.
김정일 위원은 지난해 말 6부작 보이는 라디오 콘텐츠 ‘미주 한인의 자화상’을 뉴스매거진과 녹화하기도 했다. 이 방송은 IPTV 티보플레이를 통해 미주 전역에 방송되며 유투브, 페이스북, 웹사이트 등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서도 시청자를 찾아가고 있다. 현재까지 6편 가운데 3편이 방송되었다. (아래 링크 첨부)
(김정일 방송위원의 자필 원고)
제4875회 방송을 끝으로 막을 내린 20년 시사해설의 마지막 멘트는 이민자 찬가와 감사였다.
“이민자들은 탁월한 낙천가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오천년을 살아온 땅을 뒤로하고 바다를 건너왔겠습니까. 우리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고 생각하는 믿음과 용기의 소유자들입니다. 그래도 우리 앞에 생소함이라든가, 이질감이라든가, 외로움이라든가 이런 고통이 때로는 깊습니다. 우리는 이런 고뇌속에서 피어난 눈물처럼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들꽃 같은 존재들입니다. 잡초가 무성한 들판에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피어날 수 있습니다. 인고의 세월을 견딘 꽃은 향기와 빛깔이 더 아름다운 법입니다. 성경은 “이 날은 여호와가 정하신 것이다. 이 날에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리로다”고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작별을 고할 시간입니다. 작별에 앞서 먼저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긴 세월 동안 인도해주시고 보호해주신 주님의 은혜에 엎드려서 감사를 올립니다. 오로지 주님의 사랑의 덕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긴 세월 동안 저를 신뢰해주시고 들어주시고 기도로 후원해주신 애청자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매일 새벽마다 커피와 오트밀을 정성껏 마련해준 아내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20년은 제 생애에서 가장 큰 영광과 보람이 있는 세월이었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님의 평강과 은혜가 애청자 여러분 가정에 충만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시사해설 김정일입니다.”
Sign Off.
<박원정 PD>
** 김정일의 시사해설 2020년 3월 31일 마지막 방송
** 뉴스매거진이 인터뷰한 김정일 위원: 2018년 9월 27일 방송
** 뉴스매거진 제작 <보이는 라디오: 김정일 방송위원의 ‘미주 한인의 자화상’>
제1부: 미주 한인의 자화상 https://youtu.be/T1O5cY86iZY
제2부: 미주 한인 이렇게 바뀌어야 https://youtu.be/SmSIInD_qhI
제3부: 나는 보수인가, 진보인가? https://youtu.be/nsQaANgJ1lE
제4부 ~ 제6부: 향후 공개